상속자들

이민호 "'상속자들', 소년 이민호 간직하고 싶었다" [인터뷰]

룡2 2013. 12. 30. 17:21



 브라운관에서 나온 진짜 이민호는 김탄보다는 한결 차분한 모습이었다. SBS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이하 ‘상속자들’)의 종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피곤한 기색도 엿보이는 차분함이었다. 초록빛 니트를 입은 이민호는 그렇게 ‘상속자들’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김탄과의 이별을 맞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속자들’은 지난 12일 방송된 마지막회에서 25.6%(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이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단순히 수치화된 시청률 뿐 아니라, 여러 유행어 등을 만들어내며 강한 파급력을 가진 작품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주인공 김탄 역의 이민호가 있었다. 

가을에 시작해 겨울까지, 두 계절을 김탄의 열병을 앓으며 보냈던 이민호는 예상보다는 담담했다. 그는 마지막 촬영을 하던 날,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눈이 우리의 마지막을 축복해주는 것 같았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촬영 중반 이후부터 스케줄에 치여서 힘들었어요. 끝날 때 눈이 내렸는데 ‘눈이 우리의 마지막을 축복해주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박)신혜는 많이 울었죠. 저는 드라마에서 많이 울었기 때문에 마지막 촬영 날 울지 않았어요.”

사실 이민호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역 박신혜와의 키스신에 대해 물었다. 수줍어할 것이란 생각과는 달리 소년처럼 개구지게 웃어 보인 그는 대본대로 했을 뿐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 기자나 이민호나 그 키스가 사뭇 ‘야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앞치마를 벗기고 하는 키스신은 대본에 ‘야하게’라고 돼 있었어요. 저도 앞치마가 아니라 다른 걸 벗긴다는 생각으로 했죠(웃음). 전 연기를 할 때 여배우와 미리 합을 맞추는 편은 아닙니다. 키스신을 할 때도 격하게 할거라는 언질만 줬죠. 즉각적인 반응과 교감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대본상에 ‘야하게’라는 설정이 던져지고 그 외엔 배우들이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니까.”

키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에게 ‘굿 키스를 하는 배우’라는 칭찬도 건네졌다. 실제로 그는 몇 개의 작품에서 진하고 로맨틱한 키스로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홀렸다. 그리고 여심을 사로잡은 키스신은 ‘상속자들’에서도 몇 차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키스엔 장소가 중요해요. 창고 키스신의 경우, 창고이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이잖아요. 둘이 있으면 묘한 감정이 일어나죠. 당시 스태프들도 물건 사이사이로 눈만 내놓고 저희를 촬영하셨거든요. 김은숙 작가님이 일부러 창고로 키스신 장소를 쓰신 것 같아요.”




‘상속자들’은 두 가지 면에서 이민호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하나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김은숙 작가와의 첫 호흡, 그리고 두 번째는 KBS 2TV ‘꽃보다 남자’ 이후로 다시 한 번 교복을 입었다는 것. 이제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서는 이민호는 김은숙 작가가 그려내는 고등학생의 로맨스라는 독특하고도 근사한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함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초반 경쟁작인 KBS 2TV ‘비밀’에 밀려 몇 주간 시청률 2위에 머물렀다.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감독님도 그렇고 제작자도 그렇고 당시 내색을 많이 안 하시려는 느낌이었어요. 저조차도 그랬고요. 시청률이 20%를 넘어섰을 때 감독님이 ‘내색 안하고 충실하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대본을 받아보는 입장에서 확실히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재밌어지는 게 눈에 보이고, ‘비밀’이 워낙 자리를 탄탄히 잡은 상황에서도 반응이 느껴졌어요. 다들 그렇게 큰 걱정은 안 했었죠.”

이민호에게 ‘상속자들’이 줬던 서운함은 또 있었다. 일반적으로 남자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타 로맨틱코미디에 비해 이번 ‘상속자들’은 그가 아닌 김우빈에게도 이민호 못지않은 관심이 쏠렸다. 그에게 대놓고 물었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았냐고. 

“처음부터 삼각관계의 느낌이 있었잖아요. 5회 엔딩에서 삼각관계를 예시하는 장면에서 우빈이의 영도 캐릭터와 저의 김탄 캐릭터가 맞붙는 상황이 나와요. 그 때부터 영도의 화력이 셀 거라고 예상했죠. 그 신을 찍을 때 우빈이와 처음 연기해봤는데, 에너지가 느껴지더군요. 물론 다른 드라마에서는 남자주인공 이외에는 희생을 하는 캐릭터들이 많았는데, 김은숙 작가님의 작품은 그 어떤 캐릭터도 희생되는 이가 없어요. 더군다나 영도 캐릭터는 제가 보기에도 매력 있고요. 탄이는 좋은 사람이고 멋있는 남성상이지만, 영도는 매력이 있죠.”

김우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다. 김우빈은 ‘상속자들’ 전과 후가 확실히 달라졌기 때문. 그는 몇 개월 사이에 대세로 떠올랐다. 모델 출신의 독특한 마스크를 지닌 배우에서 ‘영도 앓이’의 주인공이 됐다. ‘상속자들’이 김우빈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실제로 욕심이 많은 친구예요. 아픔도 갖고 있고요. 제가 느끼기엔, 고생을 해 본 친구 같던데요. 저도 고생하면서 겪었던 것 똑같이 겪은 친구 같다고 할까요. 한창 궁금한 것도 많고 그럴 때라, 우빈이는 솔직하게 물어보고 아는 선에서 이야기해주면서 그렇게 지냈어요.”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교복을 입고 고등학생 연기를 한 소감에 대해 물었다. 농담 섞인 질문에 이민호는 또 다시 소년처럼 깔깔대며 웃어보였다. 그는 이에 대해 “되게 죄스러웠다”며 장난스런 심경 고백을 했다. 



“‘내가 고등학생을?’이란 생각을 했죠. 동생들과 연기하다보니 확실히 나이가 조금 들어보이긴 하더군요(웃음). 그나마 우겨서 끝까지 잘 마무리한 게 다행이죠. 교복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틋하기도 한 작품이었어요. 모니터하면서도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을 했죠. 제가 언제 이렇게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학원물을 해 보겠어요.”

그의 표현대로 죄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교복이 어색해 보일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이민호가 ‘상속자들’ 출연을 택한 이유는 뭘까. 이민호는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낭만적인 답을 내놨다. 

“제 나이가 딱 소년과 남성의 중간 정도에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더 늦기 전에 지금의 제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죠. 대중들이 원하는 제 이미지 있잖아요. 지금의 외모, 분위기를 간직해서 학원물이나 하이틴물을 하고 싶어서 ‘상속자들’에 출연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상속자들’의 김탄은 이제 영화 ‘강남블루스’를 통해 거친 남자가 돼 돌아온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느와르로 파격 변신을 예고한 이민호는 소년을 버리고 남성미를 택했다. 

“‘강남블루스’는 딱 20대 후반에 접어들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소년을 버리고 남성미를 택하고 싶었죠. 저 1월부터는 욕을 아주 상스럽게 할 거예요(웃음). 그동안 제가 작품 안에서 욕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잖아요.”

그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연말 시상식에서 어떤 상을 받을 것 같냐고. 또 다시 소년의 웃음을 보여준 이민호는 “최우수상?”이라고 능청스레 답했다. 

“작년에도 최우수상 받았었잖아요. 대상을 받기엔 덜 떳떳하죠(웃음). 더 떳떳해지면 받고 싶어요, 대상은.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나이도 어리니까요. 진짜 20대 때는 대상 같은 큰 상은 받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열심히 할게요.”